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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근현대 러시아, 레닌 스탈린 고르바초프 푸틴

근현대 러시아, 레닌 스탈린 고르바초프 푸틴
  • 저자탁양현
  • 출판사e퍼플
  • 출판년2019-09-06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1-0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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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현대 러시아





    1. 러시아를 알아야 한국이 산다



    21세기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政權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執權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주 건전하며 바람직하다. 역사적 事例로써 검증되듯이, 어떤 한 편이 長期執權할 경우,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腐敗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향후 대한민국은, 적어도 朝鮮王朝와 같은 前轍을 밟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民主的 상황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隣接國의 悲劇’을 유념해야 한다.

    예컨대, 地政學的 인접국으로서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물론이며, 心理的 인접국으로서 미국과의 관계는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從北主義나 親中主義를 추종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과거 러시아(蘇聯)의 레닌主義를 이상적인 혁명전략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4월 테제’에 잘 드러나 있다. 레닌이 말하는 ‘4월 테제’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혁명의 첫 번째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제는 두 번째 단계로 도약할 때가 왔습니다.

    ‘2월 혁명’으로 수립된 共和國은, 우리의 공화국이 아닙니다. 이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自由主義 국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르주아 民主主義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 이외에, 그 어떤 정부도 필요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無産層) 독재’뿐입니다.

    때문에 자유주의, 민주주의, 부르주아적인 것들은 일체 거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막중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필코 국제 혁명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4월 테제’ 주장은, 다른 社會主義者들은 물론, 심지어 볼셰비키 내부에서조차 정신나간 아나키스트적 헛소리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共産主義者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라 資本主義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닌이 갑자기 나타나, 곧바로 공산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멘셰비키를 비롯한 사회주의 세력과 대립한 것이다.

    이어서 레닌의 ‘4월 테제’는, ‘임시정부 타도와 모든 권력은 무산층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旗幟를 내걸게 된다.

    레닌은, 전쟁 중단과 평화, 토지 분배를 원하는 노동자, 농민, 병사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것은, 反혁명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아닌, 오직 소비에트정부 즉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프롤레타리아들의 직접 독재 지배뿐이라고 주장하며, 케렌스키정부를 부정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 운동을 선동했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들리던 그의 ‘4월 테제’는, 5월이 되면서 차츰 볼셰비키 당원들에 의해 수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左派들의 기본적인 行步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무조건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전쟁을 不辭하고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련, 북한, 중국 등의 역사로써 검증되듯,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은 참으로 虛無孟浪하여 실패한 실험일 따름이다.

    다만, 현재 중국의 경우, 그런 전략적 행보로부터 일탈하여 改革開放을 실현하였기 때문에, 그나마 경제적 발전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익히 알면서도, 현재 대한민국의 左派들은, 과거 러시아의 前轍을 밟으려 한다.

    그런데 실상 대한민국의 좌파들이 추종하는 것은, 레닌 식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아니고, 몇 십년의 투쟁 끝에 所有한 자기들의 旣得權일 따름이다.

    서민대중들의 獨裁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제 몫의 利得을 목적하며, 그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개돼지 군중’이고 싶지 않다면, 이러한 현실을 분명히 直視해야 한다.

    1940년 8월 21일,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멕시코의 스탈린주의자 ‘라몬 메르카데르’에 의해 등산용 피켈(암벽등산용 곡괭이)에 머리를 맞고 암살당한다.

    그 즈음, 이미 죽음을 예감한 트로츠키는, 1940년 2월 27일에 유언장을 작성하였다.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 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내가 다시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들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요, 마르크스主義者이며, 辨證法的 唯物論者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無神論者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전 나타샤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을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그가 권력을 잃은 후부터 죽은 이후, 공산국가에서는 트로츠키主義者라는 말은, 곧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修正主義자, 反動主義者를 의미하는 가장 심한 욕이자, 한번 얻으면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사례’는, 共産主義者들 역시 자기의 旣得權的 利得을 위해 비열한 폭력을 서슴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이나 중국에서 벌어졌던 肅淸 사건들 또한 그러하다.

    때문에 共産主義的 道德이야말로, 基督敎的 奴隷道德과 별다르지 않음을 확인케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좌파 정치꾼들의 作態에서도, 이미 쉬이 검증된다.

    그러면서도 지난 保守政權에 대해서는 道德的 잣대를 들이밀며 積弊淸算으로써 糊塗하고 있다. 나아가 日本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旣往의 보수정권들이, 지지율이 하락할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한 것이, 反日 프로파간다였다.

    현재의 ‘문재인 정권’ 역시 그러하다. 세월호 프로파간다, 적폐청산 프로파간다, 반일 프로파간다 등, 온갖 프로파간다들은 그저 지지율을 목적하는 정치공작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니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사례’를 回顧케 된다. ‘문재인 정권’ 역시, 갖은 道德的 旗幟를 내세우지만, 결국엔 기존의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과 별다르지 않은, 左派的 旣得權層일 뿐이라는 판단을 갖게 된다.

    ‘스탈린’은, 사랑했던 아내가 남긴 유일한 혈육인 ‘야코프’가,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에, “다시는 그 문제를 언급하지 마라”고 했으며, 결국 독일군 진영에서 아들이 자살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두 번째 부인인 ‘나데즈다’가 낳은 ‘바실리’ 역시, 전쟁 중에 아무런 특별 조치를 기대하지 못했다.

    전쟁 도중 ‘스탈린’은,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일하며, 토막잠을 잘 뿐이었는데, 한 번은 어느 부관이 안쓰러운 나머지, 예정보다 한 시간을 더 자게 두자, 스탈린은 깨어난 후 불같이 화를 내며, “돼먹지 못한 인도주의자!”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소련을 포함한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갔고, ‘스탈린’은 소련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음을 내세워, 동유럽과 극동에서 상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리하여 ‘처칠’이 ‘鐵의 帳幕’이라고 표현한, 새로운 蘇聯帝國의 영향권이, 동유럽의 대부분과 동부 독일 그리고 북한과 몽골에까지 확보되었다.

    ‘스탈린’은 위대한 승리자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으며, 앞서의 전우들인 서방국가들이, 사회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며 냉전을 시작하자, 사회주의 진영의 총사령관으로서 자본주의 진영과 맞서는 지도자의 위상까지 더해졌다.

    그의 지배 하에서, ‘러시아(蘇聯)’는 역사상 최대의 국력과 영향력을 누리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솟았다.

    무자비한 肅淸과 恐怖政治로 독재를 확립하고, 이제는 위대한 勝利者와 領導者라는 후광까지 얻은 ‘스탈린’은, 황제를 넘어서 神의 班列에 오른 것이다.

    유능한 독재자의 治下에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國民(人民)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것은, 기묘한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강력한 독재를 실행한 ‘박정희 정권’에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현재에도 그러한 과거의 成長에 대한 鄕愁가 강하다.

    현재의 러시아 역시 그러하다. 경제가 침체될수록, 과거 美蘇 冷戰時代처럼 강력했던 소련의 ‘스탈린 정권’에 대한 향수가 불러일으켜 진다.

    그런데 서방국가들의 경우, 굳이 社會主義的 獨裁政治를 하지 않으며, 自由民主的 資本主義體制에서 경제발전을 실현하였으므로, 무작정 독재정치와 경제발전의 相關關係를 확정할 수는 없다.

    ‘옐친’은, 1989년에 인민대표위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하고, 1991년에는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고르바초프’의 최대 라이벌로 떠올랐다.

    연방의 권한을 각 공화국의 권한 위에 두려는 ‘고르바초프’에 반대하며, ‘옐친’은 각 공화국의 사실상 완전 독립을 추진했다. 그런데 痛恨의 一擊은 保守派 쪽에서 왔다.

    1991년 8월 19일, 키류초프, 야나예프 등 일단의 보수파들은, 크림 반도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고르바초프’를 급습해 연금시키고, 구체제의 복원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맹렬한 분노에 부딪쳤으며, ‘붉은 광장’에 進駐한 탱크의 앞에 드러눕고 위에 올라타는 시민들과 ‘옐친’의 연설 앞에서, 군대도 발포를 포기했다.

    保守派의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끝났으며, ‘고르바초프’는 풀려나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시대가 이미 끝났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며 지키려 했던 蘇聯도,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체제도 몰락할 것임을 예감했다.

    그는 多黨制를 도입하고, 각 共和國의 권한을 늘리는 등의 양보로, 蘇聯의 생명을 구해보려 했지만, ‘옐친’ 등은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12월 25일에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옐친’은 그 다음 날 소련을 공식 해체하며, 앞서 21일 결성에 합의한 독립국가연합이 이를 대신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70여년 동안의 ‘러시아의 社會主義 실험’은 끝이 났다. 世界史를 激動시켰던 ‘마르크스의 共産主義 실험’이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共産主義나 社會主義 이데올로기에 眩惑되어, 헛된 妄想을 지닌 자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로써 검증되듯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自由民主主義나 資本主義에 문제가 있다면, 새로운 哲學思想의 摸索으로써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러시아(蘇聯)’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이미 실패한 철학사상이기 때문이다.

    ‘푸틴’의 현재 목표는, 냉전 시기 소련의 위상으로 러시아를 돌려놓는 것이다. ‘보리스 옐친’의 집권 기간 동안 피폐해진, 러시아의 정치, 군사, 경제를 어느 정도 다시 안정기로 돌려놓았으며, 그래서 한편으로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푸틴보다 상식적인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이 있는데도 마땅히 뽑을 사람이 없다는 건, 푸틴 지지자이거나, 러시아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의 의견이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90년대 激動의 엄청난 후유증으로 인해, 변화에 대한 피로와 두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니 골수 푸틴 지지자들이 아닌 이상, 푸틴을 뽑는 사람들은, 푸틴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푸틴이 잘못한 걸 알아도, 지금 그나마 가진 것까지 박탈당하는 것이 두려워, 변화 대신 그대로 머물러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푸틴은 이것을 이용해, 각종 매체들에서 서방의 위협을 과장하여, 사람들의 피로와 공포를 증대시키는 한편, 다수의 사람들이 불만을 크게 품지 않을 만큼만 빵을 분배해, 변화할 의지를 품을 힘을 가질 조건을 제거하여,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또한 愛國主義와 國粹主義의 고취로 골수 지지층을 양성하며, 최종적으로 부정투표로 독재를 유지한다. 이러한 行態는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 엿보이는 정권 유지 정책과 유사하다.

    한 마디로, 러시아인들의 90년대의 충격으로 인한 喪失感과 敗北主義, 無力感 등이, 보수적 안정을 취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푸틴은 이걸 교묘하게 증폭시켜서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자신을 소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저항의지를 잃게 하여, 적극적 반대자들 밑에 규합되지 못하도록 저지한다.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암살하거나 누명을 씌워 투옥하고, 집권층에 불리한 정보가 올라온 인터넷 사이트는 폐쇄하는 등, 부정투표가 행해져도 저항이 크게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현재 중국의 행보와 비슷한 상황이다. 단순히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푸틴이 압도적으로 뽑히고, 부정선거를 해도 큰 저항이 안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울러 현재의 중국은, 과거 蘇聯과 비슷한 前轍을 밟고 있다. 소련은 냉전 상황에서 미국과 버금하는 강대국으로서 군림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국에 패배하여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것처럼, 급격히 부상한 중국 역시, 미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국제정치는 ‘利益과 戰爭’에 의해 작동하는 탓이다. 현재로서는 중국 역시 과거의 소련처럼 몰락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聯邦(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또는 ‘러시아(Россия, Russia)’는 동유럽과 동아시아에 걸쳐 있는 연방제 국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국가이다.

    동아시아 전체와 동유럽의 대부분에, 또한 11개의 時間帶에 걸친 넓은 영토가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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