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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중국 근대 개벽혁명 사상가들, 홍수전 손문 모택동

중국 근대 개벽혁명 사상가들, 홍수전 손문 모택동
  • 저자탁양현
  • 출판사e퍼플
  • 출판년2018-10-23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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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삐용의 開闢’과 ‘체 게바라의 革命’







    開闢은 곧 革命이다. 개벽이든 혁명이든, 흔히 인위적인 激變인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런데 天地自然 안에서 어떠한 변화든, 그것은 자연스런 변화일 따름이다. 그러한 바는, 個人이든 集團이든 매한가지다. 다만, 개벽은 원만한 自然의 측면이 강하고, 혁명은 급격한 人爲의 측면이 강하다는 차이는 있다.

    또한 개벽은 종교적 개념이고, 혁명은 정치적 개념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것은 다소 便宜的인 분별일 따름이다. 그러한 detail이 不要한 바는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개벽적 혁명이란, 천지자연 자체의 자연스런 변화라는 인식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세계에는 온갖 다양한 형식의 ‘開闢的 革命’이 항상 작동하고 있다. 그러한 개벽적 혁명 중에서, 굳이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가장 巨大한 존재형식인 國家的 차원의 개벽적 혁명도 중요하고, 가장 微小한 존재형식인 個人 차원의 개벽적 혁명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최소한의 생존이나마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 먼 古代로부터 現代에 이르도록, 우리 민족의 ‘生存의 利得’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는 집단공동체는 중국과 일본이다. 물론 북방의 여러 민족도 있으며, 현대사회에서는 미국이 가장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여건보다도 강력한 地政學的 여건을 좇는다면, 응당 중국과 일본을 우선하여 거론치 않을 수 없다.

    中國 近代 역사에서, 그러한 開闢的 革命을 실현한 인물은 홍슈취안, 쑨원, 마오쩌둥 등이다. 이 외에도 개혁적인 변화를 추구한 인물들은 많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실행한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러했다면 근대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 안에서 중국대륙은, 항상 혁명적 개벽의 변화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그래서 중국대륙을 지속적으로 지배한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반도는, 高麗王朝로부터 朝鮮王朝에 이르는 1,000여년 동안, 마치 ‘고인 물’처럼 별다른 변화가 없이 정체된, 王朝 獨裁의 역사였다.

    그래서 오히려 21세기의 한반도는, 개벽적 혁명의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만큼 개벽적 혁명의 에너지가 오랜 세월동안 응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세기를 지나면서, 이미 ‘6?25, 4?19, 5?16, 5?18’ 등의 개벽적 혁명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체험했다고 해서, 이제 개벽적 혁명의 動力이 정지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체험 탓에, 더욱 새로운 개벽적 혁명이 도래할 수 있다. 그러하다면 그러한 개벽적 혁명은 어떤 것일까.



    21세기 大韓民國이야말로, 開闢的 革命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전혀 체험할 수 없었던,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이, 철저히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人民民主主義와 共産主義’ 주변의 개벽적 혁명들이, 죄다 역사의 뒤안으로 소멸해버리는 것을, 이미 여실히 目睹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것들을 죄다 삭제해버고서 나아질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실제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면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새로움은 기대할 수 없으며, 기대해서도 안 되는 듯하다.

    어쨌거나 개벽적 혁명은, 철저한 現實主義의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예컨대 낭만적 혁명가 ‘Che Guevara’와 같은 理想主義的 想像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이었지만, 결국 한갓 ‘그림자 연극’에 불과했음이, 역사로써 검증되는 탓이다.



    예컨대, 근대 중국에서, ‘홍수전’의 太平天國이라는 개벽적 혁명의 경우를 살피면, 지금으로부터 150~160여 년 전에, 基督敎的 신화를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실로 터무니없는 열정이, 無知하고 배고픈 민중에게 먹혀 들어갔다는 사실이 참으로 怪異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보면, 첨단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예컨대 ‘허경영’의 경우를 보면, 그러한 현상들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니, 그다지 괴이할 것은 없다. 하물며 서민대중의 대부분이 ‘文盲으로서의 지적 궁핍’과 ‘奴?로서의 물질적 빈곤’에 허덕이던 과거에는 어떠 했을지, 쉬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지상세계에 진정 Utopia는 작동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유토피아는, 인간존재의 認識的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결코 나쁜 것도 아니고, 불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권력과 자본을 탐내어 표에 아부하는 ‘정치꾼’ 수천 명 보다는, ‘홍수전’이나 ‘허경영’ 같은 ‘유토피아적 이미지’가 더욱 소중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당최 가진 게 없는 서민대중으로서는, 험난한 亂世가 닥쳤을 때, 그 고통스런 세월을 견뎌낼 마땅한 방편이 도무지 없으며, 기득권층은 본래 그랬듯이 국가나 국민에게는 관심 없으며 그저 제 몫에나 집념할 때, 그래도 그나마 힘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것이, ‘미륵’과 같은 유토피아라는 개벽적 혁명의 理想鄕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홍수전’의 태평천국이 작동한 시기는, 동아시아는 물론이며, 전 세계가 집단적 난세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경우에도, 彌勒, 鄭鑑錄, 東學, 甑山 등, 다양한 혁명적 영웅과 개벽적 이상향이 등장했다. 그러니 설령 그것이 惑世誣民의 似而非에 불과할지라도, 그 의미와 가치는 각별하다. 그러한 난세에는, 외려 합법하고 적법하다는, 집단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暴壓이야말로, 더욱 잔혹하며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日帝强占 시기에, 그 主體勢力인 일본은 말할 나위 없으며, 그러한 일본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末期 朝鮮王朝는 또 어떠한가. 과연 그들에게서, 서민대중들이 一抹의 희망이라도 모색할 수 있었겠는가.

    고통의 기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면, 稀少하게도 ‘빠삐용’처럼 불굴의 의지로써 이상향을 추구하는 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대중은 시나브로 매몰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할 때, 영웅과 이상향은 참으로 소중한 대상으로서 작동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야만 한다. 이는 실로 현실세계의 不得已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아주 잘 알려진 두 가지 캐릭터를 회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향후, 21세기 韓民族의 개벽적 혁명을 모색함에 있어, 아주 강렬한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작 ‘체 게바라’는 ‘빠삐용’의 同一的 그림자였음을, 반드시 유념해야만 한다.

    그런데 ‘체 게바라’와 ‘빠삐용’의 ‘이미지 중첩’과 유사한 역사적 상황으로서 모티브가 된 것은, 근대 중화민국과 조선왕조에서 등장한다. 중국군벌 ‘차오루린’은, 조선왕조의 ‘이완용’과 상호 유사한 캐릭터다. ‘차오루린’은 ‘5?4운동’의 비난의 대상이고, ‘이완용’은 庚戌國恥의 비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문제가 되는 외교문서에 결정적으로 직접 서명을 하였으니,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서명한 것은, 비단 개인의 결정에 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상황에 처하여, 그러한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니 일견 ‘역사적 희생양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중들은 時流를 좇아, 대다수가 비난을 하면, ‘생존의 이득’을 도모하며, 집단의 관성에 떠밀려 多數의 무리에 편승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니 집단대중에게는, 어떤 집단적 인식능력이나 판단능력이 있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완용’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는 韓民族의 대표적인 민족반역자로서, ‘나라를 팔아먹은 놈’이라고 규정되어 비난받는다. 그래서 단지 ‘이완용’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極右나 極左에 의해 비난받는 상황까지도 연출된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이완용’처럼 행동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極右的인 衛正斥邪主義者’나 ‘極左的인 獨立主義者’처럼, 적극적인 폭력행사도 不辭하는 극단주의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집단대중은 ‘이완용’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생존의 이득’을 도모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인간존재의 행동방식이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비난한다. 비난을 표하지 않으면, 자칫 자기가 ‘희생양 이미지’가 되어버릴 수 있는 탓이다. 게다가 자기 편의 숫자가 多數이면, 이제 비난의 정도는 가혹할 지경에 이른다. 이는, 어떻게든 ‘희생양 이미지’를 제작하고야 마는, ‘권력의 가혹한 本性’이다.

    그리고 정작 대표적 민족반역자로서,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응당 그 시절에 가장 큰 권력을 지녔던, 高宗에게 묻는 것이 합당하다. 어쨌거나 ‘차오루린’이나 ‘이완용’은 ‘역사의 희생양 이미지’로서, 아주 오래도록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때를 잘 만나야 한다’고들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차오루린’과 ‘이완용’이 상호 유사하게 ‘이미지 조작’되었다면, 정반대의 위치에 배치되어 ‘이미지 조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동시대에 발생한 상황이므로, ‘역사적 이미지 조작’을 思慮함에 있어, 재미있는 비교가 될 수 있다.

    현대의 중국이나 대만을 가보면, 소위 ‘中山公園’이나 ‘中山路’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것은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매한가지다. 이는, ‘손문(쑨원)’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쑨원’은 그야말로, 현대의 중화민국을 제작해 낸 國父로서, 굳건히 자리매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近代史를 살핀다면, 실상 ‘쑨원’의 역할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니 아무래도 과장된 ‘역사적 이미지 조작’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물론 ‘쑨원’이 나름대로 중국의 근대화에 主演으로서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餘他 인물에 비해 별로 인상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에 동시대에 대한민국에서, 대체로 ‘이승만’은, ‘쑨원’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다. ‘이승만’ 역시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 ‘쑨원’처럼 國父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승만’을 거론할 때면, ‘정읍 선언’에 의한 남북분단의 元兇이며, 고집센 高齡의 독재자로서 규정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일부 보수적 세력을 제외한다면,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이승만’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 또한, ‘쑨원’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이미지 조작’되었듯이, ‘이승만’은 지나치게 축소되어 ‘이미지 조작’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역시 당시의 상황에서, 누구 못잖게 나름대로 민족의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다시 日帝强占과 같은 지옥으로 매몰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적 이미지 조작’의 片鱗들을 조합해 놓은 것이, 바로 역사이다. 그러니 역사를 대할 때,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할지에 대해서, 항상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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