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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불씨잡변

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불씨잡변
  • 저자정도전
  • 출판사e퍼플
  • 출판년2018-09-15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1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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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三峯 鄭道傳의

    洪範九疇와 Ideologie 政治學

    그리고 佛氏雜辨







    三峯 鄭道傳의 政治哲學을 大別하는 槪念은 洪範九疇와 Ideologie다. 정도전의 시대에, 세계의 覇權國은 두말할 나위 없이 中國이었다. 때문에 정도전은 政權의 簒奪을 위해 중국과의 外交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정도전의 시대는, 高麗王朝에서 朝鮮王朝로 易姓革命이 實行되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당시의 혁명은 理念革命의 성격이 짙다. 그 이념혁명의 주된 대상은 佛敎思想이었다. 그 실제적인 검증자료는 말할 나위 없이 佛氏雜辨이다. 정도전은 불교사상을 정치철학적으로 論破함으로써, 새로운 政權의 정당성을 모색한 것이다. 물론 佛敎만이 王朝交替의 빌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혁명의 動力으로 삼으려고 했던 정도전의 시도는, 지극히 현대적인 革命論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봉 정도전의 혁명론은, 그 전반적인 이념적 바탕을 書經의 洪範九疇에 두고 있다. 나아가 정도전이 활용하는 홍범구주는 箕子朝鮮에 사상적 기원을 둔다. 때문에 정도전은 자연스레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자조선에 두게 된다. 이는 역성혁명 당시 朝鮮이라는 國號가 결정된 까닭이기도 하다.



    ‘書經 甘誓’에서는, ‘五行’이 ‘서경’의 시대로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임금’의 아들 ‘啓’는, ‘우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세습 받는다. 그런데 庶兄 ‘有扈氏’가 그 왕위계승에 不服하자 정벌을 감행한다. ‘계’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보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유호씨’가 ‘五行’의 원리를 저버리고, ‘三正’을 태만히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벌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水火木金土의 오행’의 원리나, ‘天地人 三才’의 바른 도리로서의 ‘삼정’은 지극히 철학적인 원리들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거부가 정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오행’과 ‘삼정’을 해석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불복에 대한 보복이라는 실제적인 정벌 이유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계’는 만약 ‘命’을 따르지 않는다면, 정벌의 대상인 ‘유호씨’는 물론이며, ‘하’나라 朝廷의 신하일지라도 아주 가혹한 刑罰을 부과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한 것은, ‘계’의 명령은 ‘天命’에 따라 ‘天罰’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경’의 시대에는 응당 이러한 논리를 信念하므로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측면이 있지만, 그 명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철학적 원리를 거론하여 정치적인 결정을 하므로 지극히 정치철학적이다. 더욱이 가혹한 형벌의 부과가 가능한 것은 ‘오행’이나 ‘삼정’의 권위가 그만큼 강력했음을 示唆한다.



    ‘조선왕조’에서 ‘五行’에 대한 이해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선왕조’ 前期 ‘徐居正’은 ‘四佳集’에서 이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 ‘서거정’의 ‘陰陽五行’에 대한 이해는,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에게서 일반적인 것이다. ‘서거정’은, ‘聖人’에 의해 제작된 ‘홍범구주’나 ‘주역’에 의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에 내재된 철학적 理致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실제로 점을 쳐서 ‘吉凶’이나 ‘善惡’을 결정하는 일은 排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행’이라는 것은 천지자연에서의 삶의 조화를 목적하여 도출된 철학적 사유방식이며, 그것으로써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점을 치더라도, 그것은 ‘홍범’에서 이르는 ‘稽疑’나 ‘庶徵’의 경우처럼 일종의 幾微이며, 그러한 기미를 잘 살펴서 ‘天命’을 좇아 ‘人性’을 올바르게 하는 삶의 방향을 摸索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거정’은 태어난 歲月日時의 ‘四柱’로써 ‘세 가지 등급의 운명[三命]’ 따위를 거론하는 牽强附會를 例로 들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甘誓’의 시대처럼, 현실적으로 ‘오행’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임금’의 아들 ‘계’는 ‘禪讓’이 아니라 ‘世襲’으로써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러한 ‘夏’나라의 政治權力的 변화는,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물론이며 ‘조선왕조’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측면은, ‘오행’의 해석과 활용에 있어 ‘감서’의 시대와 ‘조선왕조’가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왕조’에서는 ‘오행’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확장하여 ‘道敎’나 ‘佛敎’를 비난하고, 지속적으로 배척한다. ‘조선왕조’가 政權의 정통성을 보장 받기 위해 ‘事大主義的 儒學’을 國是로 삼았으며, 때문에 ‘도교’나 ‘불교’의 경우처럼 ‘유학’ 이외의 학문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異端이나 邪道로 규정하고서 탄압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이는 ‘오행’ 개념을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월 10일 乙亥日 2번째 기사(1400년, 明 建文 2년)에는, ‘定宗’이 ‘經筵’에서 강론하는 내용이 있다. 이 記事로써,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이 ‘부처’를 귀신과 유사한 존재로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지극히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定宗’은 자기의 실제적인 체험을 거론하며, 흔히 ‘샤머니즘’이나 ‘民間信仰’으로 분별되는 것에 대한 ‘河崙’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부처’가 주장하는 ‘慈悲’와 ‘不殺生’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륜’은 ‘부처’의 ‘자비’나 ‘불살생’은 당시 ‘西域’의 상황에서 유효할 따름이며, ‘불교’의 핵심 敎理인 ‘輪?’나 ‘報應’ 역시 ‘유교’의 철학적 인식과는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이제 談論은 神話의 차원으로 飛躍한다. ‘정종’이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정종’은 ‘부처’의 ‘誕生說話’와 ‘死後地獄說’에 대해서 묻는다. ‘정종’은 동생 ‘李芳遠’에 의해 왕위에 오른 탓에, 아무런 實權이 없는 왕이었다. 때문에 재위 2년 만에 寶位를 ‘이방원’에게 넘겨주고 ‘上王’으로 물러난 인물이다.

    따라서 위의 기사 내용이 재위 2년에 발생한 일을 기술한 것이므로,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없지 않다. 여하튼, ‘정종’의 질문에 대한 ‘하륜’의 답변은 표면적으로는 소박하며 신념에 차 있다. ‘부처’가 사람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사람이 죽으면 地獄으로 간다는 것은, 한갓 似而非의 惑世誣民에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음양오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하륜’의 論理를 살필 때, 그가 발언하는 ‘음양오행’이 似而非的이지 않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 역시 신화적인 神異의 차원에서 작동할 때에는, 그 폐해가 별다를 게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하륜’은, 당시 ‘정종’의 정치적 立地나 ‘조선왕조’ 초기의 政局을 思慮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발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답변에 대해 수긍하는 ‘정종’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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