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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의 선비 매천 황현의 죽음의 미학, 매천집

조선의 선비 매천 황현의 죽음의 미학, 매천집
  • 저자황현
  • 출판사e퍼플
  • 출판년2018-09-15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1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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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自殺의 悲劇 죽음의 美學 그리고 梅泉 黃玹







    매천 황현의 죽음은, 지극히 美學的이며 藝術的인 사건이다. 自殺이라는 죽음의 形式으로써, 자기의 삶 자체를 하나의 藝術作品으로서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藝術作品性은 그의 絶命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은 매천 황현의 절명시 4편이다.



    난리 속에서 어느덧 백발의 나이가 되어버렸네

    亂離滾到白頭年

    몇 번이고 죽어야 했는데 차마 그러지 못했네

    幾合捐生却未然

    오늘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의 촛불만 밝게 하늘을 비추네

    輝輝風燭照蒼天



    요사스런 기운이 자욱해 황제의 별이 옮겨 가니

    妖???帝星移

    침침한 궁궐에선 시간마저도 더디 흐르네

    九闕??晝漏遲

    임금의 명령일랑은 이제 더 이상 없을 테니

    詔勅從今無復有

    종이 한 장 채우는 데도 천 줄기 눈물뿐이네

    琳琅一紙淚千絲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더니

    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이미 물속에 잠겨버렸네

    槿花世界已?淪

    가을날 등불 아래서 책을 덮고 먼 옛날 회고하니

    秋燈掩卷懷千古

    인간 세상 지식인 노릇 참으로 어렵기만 하네

    難作人間識字人



    짧은 서까래만큼도 지탱한 공 없었으니

    曾無支厦半椽功

    단지 살신성인일 뿐 충성은 아니라네

    只是成仁不是忠

    결국 송나라 윤곡의 자살을 흉내 내고 있으니

    止竟僅能追尹穀

    그때 진동처럼 저항치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네

    當時愧不?陳東



    고독한 자살 여행자 매천 황현의 죽음을, 대체로 殉國, 絶命, 自決로써 표현한다. 어쩐지 自殺이라는 표현은, 不敬한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는 분명 飮毒自殺했다. 절명시에서 드러나듯, 황현 자신도, 보다 적극적인 獨立運動이나 義兵抗爭을 하지 못하고서, 그저 자살의 형식을 취하는 無力함을 한탄한다.

    乙巳條約을 乙巳勒約으로, 韓日合邦을 庚戌國恥로, 閔妃를 明成皇后로 표현한다고 해서, 지난 歷史의 汚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歷史的 解釋은 달라지게 된다. 植民史觀을 지녔는가, 民族史觀을 지녔는가에 따라, 事大主義史觀을 지녔는가 등에 따라, 사용되는 표현은 응당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설령 歪曲되어버린 역사일지라도, 기존의 역사 자체를 消失시켜서는 안 된다. 왜곡된 역사 역시 망각되어서는 안 될 역사다. 다만 역사적 해석의 측면에 있어, 명료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황현의 죽음을 순국이라 하든, 절명이라 하든, 자결이라 하든, 자살이라 하든, 다만 적어도 그 죽음 자체의 實在를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近來에도 어느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逝去와 自殺이라는 표현으로써 論難이 紛紛했다. 어느 國會議員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런데 실상 둘 다 그릇된 표현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이 지닌 現象的 事實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죽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를 따름이다. 그러니 서거라고 주장하는 측과 자살이라고 주장하는 측의 역사는, 모두 그 자체로서 保傳되어야 한다.

    다음은 매천집 중에서, ‘졸고를 초록한 책 뒤에 써서 중삼에게 주다’라는 글이다.



    나는 어린 시절 더러 총명하다는 추임을 받아, 일찍부터 쓸데없는 과거 공부에 매달렸다가, 스물에야 비로소 近體詩를 익혔고, 서른에 비로소 散文을 배웠다.

    선배나 長老 가운데, 大家로 칭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손을 꼽아 그 나이를 따져 보고는,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되겠지.’ 하고 외람되이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이 되어, 이렇게 빈손이 된 뒤에야, 문장은 정해진 운명이 있으며, 나이로 논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중삼을 보면, 번번이 내 어린 시절의 일이나, 당대 대가들의 나이가 얼마인지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의 생각이 내 지난날과 같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



    매천은 당대의 秀才였다. 조선왕조에서 매천 황현과 같은 재능을 지녔다면, 응당 立身揚名을 도모키 마련이다. 그런데 生來的으로 시대와 不和했던 매천은, 철저히 世間을 외면하고 은둔하며, 빈곤 속에서 자기의 학문을 지속해 간다. 그러면서 자기의 학문이 完成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悔恨한다. 이러한 태도는, 조선왕조의 사대부에게서 쉬이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필자로서는, 자꾸만 황현의 삶의 旅程에 필자의 형편이 오버랩된다. 다만 필자는 황현 같은 수재가 아니며, 어린 시절부터 실로 鈍才이다. 그저 황현처럼 학문을 좋아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에 매이지 않으며, 필자 나름의 學問旅程을 걷다 보면, 차츰 나아져서 일정한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황현의 회한에 공감하는 나이가 되고보니, 왜 황현이 위와 같이 吐露했는지 알 듯하다.

    인간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는 존재는 아니다. 애당초 나아질 만한 人材라면, 이미 어릴 적부터 그 幾微를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니 자기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최 이룰 수도 없는 허망한 일에, 온통 인생을 저당잡혀 虛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朝鮮王朝로부터의 弊害的 慣性을 논할 때, 兩班에 대해 곧잘 거론한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旣得權을 지닌 지배세력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조선왕조를 비판할 때는, 不得已 王室이나 兩班士大夫가 그 주된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할 때에는 양반을 욕하면서도, 정작 자기 家門을 소개할 때는, 어떻게든 由緖 깊은 兩班家이고자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 인구의 40% 가까이는 奴婢였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平民이거나 中人이었다. 본래 양반사대부는 전체 인구의 5% 남짓이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전쟁 이후, 혼란기를 틈타 신분 세탁을 하여, 조선왕조 후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니 현대인의 절대다수가 양반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조선왕조가 이미 몰락해버린 시절인데도, 여전히 兩班家이고자 하는 심리상태는, 참으로 기괴할 따름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집안도 상놈집안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祖上이 농민이나 노동자로서 상놈이란 사실이 부끄럽고 싫은가. 그러면서도 平等이나 人權 따위를 논할 때에는, 농민이나 노동자 편에 서서 주저없이 양반을 욕한다.

    梅泉의 시대로부터 다소 세월이 흐른 후, 양반사대부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필자로서는 어쩐지 매천을 回想케 된다. 매천이야말로, 조선왕조를 통털어 몇 안 되는, 양반다운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그의 ‘양반다움’이, 결국 그의 삶을 자살의 비극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탓에, 그의 비극은 지극히 美學的이며, 삶 자체로서 顯現해낸 가장 숭고한 예술작품이라고 여겨진다.

    다음은 中國人인 江謙이 쓴 梅泉集 序文의 한 대목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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