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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전쟁과 국제정치, 임진왜란 1권, 신립과 선조와 이순신

전쟁과 국제정치, 임진왜란 1권, 신립과 선조와 이순신
  • 저자조선왕조실록
  • 출판사e퍼플
  • 출판년2018-09-15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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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朝鮮王朝實錄,

    申砬의 自決, 宣祖의 播遷, 李舜臣의 거북선







    온갖 美辭麗句를 동원하여 美化하고, 갖은 理論과 言說로써 정당화하더라도, ‘백성의 삶’을 보장하지 못 하는 정치는 실패한 정치다. 곧 ‘天命’을 저버린 정치다. 그러므로 응당 새로운 ‘천명’에 의한 征伐이나 革命으로써 변화되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하는데, 현대사회에 이르도록 대부분의 정치철학적 관점들은, 强大國이 되어서 강력한 覇權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현실적 일반론인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 방법론에 차이가 있을 뿐,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가 현실정치에 적용되어야 함은 별다르지 않다.

    저 먼 ‘堯舜夏殷周’의 시대로부터 현대의 21세기에 이르도록, 정치는 ‘名分’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實利’에 의해 작동한다. 현실정치에서 작동하는 ‘명분은 실리의 도구’일 따름이다. ‘명분’을 목적하는데 ‘실리’가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실리’를 목적하는데 ‘명분’이 끼어드는 것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현실정치는 결코 나아지지 못 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치사’에서 가장 ‘명분’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조선왕조’의 정치를 분석함으로써 명확히 검증될 것이다. 실상 ‘조선왕조’의 정치야말로 다분히 ‘실리’를 추구한다.

    예컨대, ‘이성계’와 ‘정도전’이 ‘威化島 回軍’을 감행하고,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를 선언함으로써 政權의 안정을 도모한 것은, 응당 ‘실리’를 추구한 것이며, ‘명분’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명분’을 추구했다면, ‘遼東 征伐’을 실행하여 우리 민족 본래의 영토를 되찾으려는 ‘거대한 명분’에 충실하였을 것이다. 단지 ‘조선왕조’의 정권이 아니라, ‘고구려’, ‘발해’, ‘고려’ 등으로 이어지는 웅대한 민족적 숙원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명분다운 명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는 물론이며 현대에서도, 그러한 정치적 선택을 ‘명분’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러한 선택이 ‘명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명분과 실리’를 恣意的으로 誤用함으로써 大義名分를 왜곡하는 것일 따름이다.

    아울러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명분’의 대표 개념으로서 흔히 강조하는 ‘春秋大義’도, 대체로 그 실제적 활용은 ‘중국’ 중심으로 국가 間의 세력판도를 구축하려는 ‘尊王攘夷’의 ‘실리적 정책’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slogan’이었을 따름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 역대 왕들을 중심으로 기술한 歷史書이며, 역대 왕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最高權力者로서 代表政治家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된 내용들이 지극히 정치적일 것임은 明若觀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서이므로, 歷史學의 전유물이어야만 한다고 쉬이 豫斷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참된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 타당하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대표적 역사서인 ‘司馬遷의 史記’는, 3,000여년의 역사를 526,500글자로 압축하여 인물의 傳記를 위주로 하는 ‘紀傳體’로 기술되었다. 때문에 史實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하다. 따라서 자칫 誤讀할 수 있다.

    반면에 ‘조선왕조실록’은 ‘太祖實錄’로부터 ‘哲宗實錄’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매시간 사건 중심으로 기술하는 ‘編年體’로써 기록하여, 1,893권 888책이라는 방대한 텍스트를 구성하였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정치적 상황을 아주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日帝’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高宗實錄’과 ‘純宗實錄’에서도 유용한 자료들을 취할 수 있다. 특히 ‘政治史’의 측면에서라면 말할 나위 없다.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1월 25일 庚申日 1번째 기사(1395년, 明 洪武 28년)에는, ‘鄭道傳’과 ‘鄭摠’이 ‘高麗史’를 편찬하여 바치자, ‘太祖’가 내린 ‘敎書’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태조의 교서’를 살피면, ‘조선왕조’ 最高權力者의 ‘실록’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이 的確히 지켜질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태조’는 ‘고려왕조’의 史料가 부실하였음을 지적한다.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왕조는 결국 망각되어버리기 때문이다. ‘先史와 歷史’의 분별을 좇는다면, ‘역사의 시대’에 역사에 존재하지 않음은 곧 역사적 멸망인 것이다.

    예컨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적 문헌이 부재하거나 부실한 탓에 ‘檀君朝鮮’, ‘夫餘’, ‘沃沮’, ‘渤海’ 등은 그 國家 역시 역사적으로 부재하게 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모두 逸失되어버린 역사적 상황을 복원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 ‘上古史’의 재정립이 難題인 까닭이다.

    ‘태조’의 인식처럼, 역사는 후대의 龜鑑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확히 기술하여야 한다.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대표적인 역사 記述法으로서 제시되는 것이 ‘孔子의 春秋筆法’이다. 그러나 ‘공자’와 같은 ‘聖人’의 ‘春秋直筆’을 좇는 경우마저도, 지나치게 大義名分을 앞세우며, 오히려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역사를 왜곡하여 구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후대의 ‘申采浩’는 ‘朝鮮上古史’에서 ‘춘추필법’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朝鮮上古史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아무 맛없는 ‘어느 임금이 즉위하였다’, ‘어느 대신이 죽었다’ 하는 등의 年月이나 적고, 보기 좋은 ‘어느 나라가 사신을 보내왔다’ 하는 등의 사실이나 적은 것들이요, 위의 두 節과 같이 시대의 본색을 그린 글은 보기 어렵다. 이는 ‘儒敎徒’의 ‘春秋筆法’과 ‘외교주의’가 편견을 낳아서, 전해 내려오는 ’古記‘를 제멋대로 고쳐서, 그 시대의 사상을 흐리게 한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결코 容易한 것이 아니다. 우선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는 정치철학의 정립이 동시적으로 요구된다. ‘춘추필법’을 원칙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도, 그 내용이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그러해서는 歷史書로서 가치를 부여받기 어렵다. 그러나 ‘三國史記’나 ‘高麗史’에 비한다면,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술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歷史書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흔히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왕조가 멸망한 뒤에 다음 왕조에서 이전 왕조 전체에 대해서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前朝事’라고 한다. 또 하나는 각 王이 죽은 뒤에 다음 대에서 前任 왕에 대해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實錄’이라고 한다.

    ‘실록’이 ‘조선왕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도 있다. 예컨대, ‘일본’의 ‘文德皇帝實錄’과 ‘三代實錄’, ‘베트남’의 ‘大南寔錄’, ‘중국’의 ‘大明實錄’과 ‘淸實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타의 ‘실록’이 ‘宮中史’ 위주인 데 비해, ‘조선왕조실록’은 중앙정치 뿐만 아니라 민간의 정치적 상황까지도 赤裸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조선왕조실록’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토록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太祖實錄’부터 ‘哲宗實錄’까지, 25대 472년에 걸쳐 총 1,893권, 888책이 간행되었다. ‘日帝强占期’에 ‘高宗實錄’ 52권 52책, ‘純宗實錄’ 22권 8책이 간행되었지만, 대체로 이 두 ‘실록’은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고종실록’ 後期부터는 ‘大韓帝國’의 역사서이므로, ‘조선왕조’의 역사서와는 차별적이라고 할 것이다. 廢位된 왕에 관한 기록은 ‘실록’이라고 부르지 않고 ‘日記’라고 불렀다. ‘魯山君日記(端宗實錄)’, ‘燕山君日記’, ‘光海君日記’가 그것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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