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찬 김이 꽉찬 방안같이 몽롱하던 하늘부터 멀겋게 개이더니 육지의 푸른 산봉우리가 안개 바다 위에 뜬 듯이 우뚝우뚝 나타났다. 이윽하여 하늘에 누릿한 빛이 비치는 듯 마는 듯할 때에는 바다 낯에 남았던 안개도 어디라 없이 스러져 버렸다.
한강환(漢江丸)은 여섯시가 넘어서 알섬[卵島]을 왼편으로 끼고 유진(楡津) 끝을 지났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항구에 들어왔을 것이나 오늘 아침은 밤 사이 안개에 배질하기가 곤란하였었으므로 정한 시간보다 세 시간 가량이나 늦었다.
안개가 훨씬 거두어진 만경창파는 한없는 새벽 하늘 아래서 검푸른 빛으로 굼실굼실 뛰논다. 누른 돛 흰 돛 들은 벌써 여기저기 떴다. 그 커다란 돛에 바람을 잔뜩 싣고 늠실늠실하는 물결을 좇아 둥실둥실 동쪽으로 나아가는 모양은 바야흐로 솟아오르는 적오(赤烏)나 맞으려 가는 듯이 장쾌하였다.
여러 날 여로에 지친 손님들은 이 새벽 바다를 무심히 보지 않았다.
먼 동편 하늘과 바다가 어울은 곳에 한일자로 거뭇한 구름 장막이 아른아른한 자주빛으로 물들었다. 그것도 한 순간 다시 변하는 줄 모르게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 분홍 구름이 다시 사르르 걷히고 서너 조각 남은 거무레한 장미빛으로 타들더니 양양한 벽파 위에 태양이 솟는다. 태연자약하여 늠실늠실 오르는 그 모양은 어지러운 세상의 괴로운 인간에게 깊은 암시를 주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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