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甲午) 이후 귀족의 몰락과 시민의 대두로 된 신진대사(新陳代謝)는 다시 한 번 이 관념을 바꾸어 이제는 문학이라면 한글문학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민의 경제 야망에서 일어난 외국문물의 섭취와 언문일치(言文一致)운동의 급속도적 성공은 시민 문화의 생장을 용이하게 한 것이었다.〈본문 중에서〉
당시에는 한 번에 70여종의 소설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특히 수호전(水滸傳)은 조선 고대 문예에 영향을 끼친 일은 크며 허균 같은 인물은 이것을 100번이나 읽고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집구석에서는 이를 많이 읽으면서 일반에게는 읽지 말라고 권장하였다.〈본문 중에서〉